London to Paris
내가 말했다.
‘우리 나중에 농사짓고 살자.’
그래, 그 목소리의 주체는 분명 나였다.
농사가 까닭 없는 투정은 아니다.
나는 평지가 좋고 멈추는게 좋고 그러면서 그 안에서 이야깃거리가 생기는 게 좋은 사람이다.
농사는 여기에 적격이다.
콩도 팥도 고추도, 그리고 넒은 의미에서 가축도 농사다.
소도 닭도, 닭과 비슷한 오리도 우리 함께 키워보자.
대신 인생의 마지막 10년만이다.
지금 한창인 너에게 설마 창살 있는 감옥을 농장으로 포장해서 주려고 하겠는가.
나는, 결코 트렌’디’하지, 않다.
평생 부모 세대가 말했던 그놈의 삐딱선을 타고 타다가 너를 만났다.
너라는 말이 참 예쁜 것은 너를 통해서 나를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뒤로 가는 것이 앞으로 가는 기차 자리 앉았다.
내가 무사하게 파리로 간다면 나는 텍스트를 보낼 것이다.
블루가 오렌지라고, 우리는 지나치게 선명하다고.
안심해라.
내가 가진 시간이 너보다 턱없이 부족함을 안다.
그럼에도 자신 있는 것은 주변의 소소한 것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로 예민해야 먹고사는 시대 아니던가.
고맙다, 이번에도.
나는 당분간 턱을 곧고 사물을 보련다. 뭣이 됐든 그 모양으로 내 DNA를 투영하겠다.
라프 시몬스의 텍사스발 퓨쳐리즘을 이해하기엔 캘빈 클라인 너무 뉴욕이었다.
“처절하게 희생해야 해. 그래야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쳐다봐 줄 거야.”
내 가치가 너를 만나 꽃을 피어 서양으로 가련다.
나는 꽃에 취했고, 글에 취했고, 읽히지 않는 말로 적힌 화이트 와인의 상표에 취했다.
파리다.
아직 평지 따위 흥얼거릴 때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