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순수하게 엄마를 ‘엄마’라고 부를 수 있을까.

원래부터 가진 것이 없었으므로 더 이상 욕심낼 것도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내 말간 민낯을 보며 만족할 날이 올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나를 닮은 아이를 보게 될 수 있을까.

내가 내 옷장을 정리하고, 거실 테이블의 먼지를 닦을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경기도 양평의 집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고 출퇴근할 날이 올 수 있을까.

팀원들에게 조금 모자라 보이더라도 따뜻한 미소를 날리며 마감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내년에는 발로 썼다 한들 드라마 극본 공모전에 한 개라도 출품할 수 있을까.

일주일에 한 시간이라도 운동 비슷한 걸 할 수 있을까.

반대로 술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로 줄일 수 있을까.

거의 30년 동안 응원하고 있는 여자 농구 팀이 올해는 프로 리그 첫 우승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믿고 있는 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잠시나마 키우던 강아지를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을까.

이틀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쉴 수 있을까.

다음 주부터 계속될 도쿄, 뉴욕, 런던 등의 출장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고질병인 인후염을 두 번은 더 겪지 않고 올겨울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정말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생길 수 있을까.

다음 주 내로 곰팡이가 슨 이불과 베개를 새것으로 교체할 수 있을까.

지금 가진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변함없이 행동으로 옮길 만한 용기를 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

배고픔 앞에서 차분할 수 있을까.

여동생 딸 ‘솔이’가 사춘기가 되더라도 인정받는 외삼촌이 될 수 있을까.

1년 안에 아빠에게 보고 싶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눈이 내리는 것을 진심으로 기다려볼 수 있을까.

내가 파운더founder가 된 패션 매거진을 전 세계에 파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소년의 몸이 될 수 있을까.

단 하나의 너에게 단 하나의 사람이라는 신뢰를 줄 수 있을까.

그래서 영원한 것도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함께 서양 어디에선가 첫 쇼를 할 수 있을까.

인터뷰를 할 수 있을까.

책을 낼 수 있을까.

아늑한 가게를 낼 수 있을까.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어떤 강 앞에서 백발의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깔깔거리며 같이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까.

2018년이라는 말을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되는 이 먹먹한 순간을 2019년 이맘때는 먹먹하지 않게 맞이할 수 있을까.

나, 다 이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