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BILITY
고등학생 시절 내 꿈은 VJ였다. 1995년 케이블 TV 채널 엠넷의 개국과 더불어 재키림, 최할리 등 1세대 VJ들이 브라운관을 채웠고, 그들은 내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케이블 TV는 팝스타들의 뮤직비디오에 힘입어 당시 가장 창조적인 미디어 플랫폼이었다. 말투와 태도는 물론 옷차림과 화장법까지, 이들이 우리에게 던진 화두는 ‘개성’이었다. 한마디로 눈에 띄어야 한다는 것. X세대라는 신조어와 더불어 ‘누네띠네’라는 아이스크림까지 히트 쳤을 정도로 어떻게든 도드라지는 차림을 하고 강남역을 누벼야 했다.
어느덧 케이블 TV가 올드 미디어로 꼽히게 된 요즘, 이제 유튜브와 소셜 네트워크로 대표되는 1인 미디어는 눈에 띄고자 하는 거리의 욕망을 디지털화했다. 이른바 가시성(Visibility). 시각적인 것에 가장 민감한 패션계는 너나없이 전투적으로 달려들었다. 가시성을 위한 도구도 진화했다. 1차원적이지만 가시성에 꽤나 효과적이었던 각양각색의 로고 플레이를 넘어, 바야흐로 올겨울의 핵심 키워드는 발광(發光)이다. 좀 더 포장해 말하면 고가시성 패션(High-Visibility Fashion).
미우치아 프라다는 고상한 캐시미어 코트를 버리고 미래 세계에 온 듯한 네온 컬러를 뿜어내고 있다. 어떻게 이런 색을 입혔는지 신기할 정도로 형광빛이다. 소방관이나 환경미화원이 안전을 위해 입는 반사 재킷은 준야 와타나베와 캘빈 클라인 205W39NYC를 비롯한 일류 브랜드의 애정을 받으며 도버 스트리트 마켓 등 편집매장의 윈도를 장식하고 있다. 그 핵심 소재인 3M 스카치라이트는 리플렉티브(reflective) 패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옷뿐 아니라 가방, 신발 가릴 것 없이 완벽한 원톱 주인공이다. 느닷없이 패션계의 안전 제일주의가 실현된 셈이다.
브랜드의 수장이 바뀔 경우 가시성 높은 이벤트는 당연시된다. 버버리는 홍콩의 이층버스, 서울의 플래그십 매장, 런던의 블랙 캡 등을 리카르도 티시가 만든 새로운 버버리 로고로 감싸는 독창적인 포장 마케팅으로 현실과 디지털 세계에서 모두 화제를 모았다. 역시 새로운 광고 캠페인과 로고를 전 세계 곳곳의 벽마다 포스터로 붙이며 에디 슬리만을 환영한 셀린느 역시 마찬가지다.
패션 매거진의 경우 커버의 가시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스크롤을 멈추게 할 만한 도발적이고 매력적인 글과 그래픽을 위해 전부를 건다. 2종 커버는 예삿일이며, 맞다. 이달 는 제호부터 번쩍인다.
A.I가 먹거리 광고를 제작하고, 가상 인플루언서 누누리(Noonoouri)가 디올의 새로운 립스틱 모델이 됐다. 2019년을 눈앞에 둔 지금 어떻게 진정성 있고 미래적인 가시성을 쟁취하느냐는 숙제를 넘어선 숙명이다.
이달 는 디지털 에디터 2명과 뷰티 에디터 1명, 피처와 아트 디자인을 넘나드는 에디터 1명 등 총 4명의 새 얼굴을 충원했다. 예측이 불가능한 까마득한 디지털 세계, 우리가 가는 길을 여러분이 잘 식별할 수 있도록, 뿌연 시계(視界)를 맑고 푸르게 걷어내기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