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 Photography Woo Chul Jang

Kakegawa, 2017

Munich, 2015
지금보다 어렸을 때 일기에 이런 말을 적었다. “모든 길은 이어져 있구나.” 무슨 일로 부산엘 갔다가 어디와 어디와 어디를 거쳐 며칠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 밤이었다. 그 후로도 생각했다. 어디로든 떠났다 돌아오는 길이면 종점을 알리는 이정표처럼 그 말을 받아들였다. 안심했나? 금세 불안해졌나? 글쎄, 남은 것은 누구 말대로 사진뿐이라, 기분 따위는 지난 계절에 따 먹은 열매처럼 여기에 없다. 씨앗도 툽 뱉어버렸지.
뮌헨에서 잉글리시 가든으로 들어섰을 때, 파리 생제르맹데프레에서 카페와 카페를 잇는 걸음을 곡선이라 여길 때, 루앙프라방이 한낮일 때, 이스탄불 골목길로 저녁이 오려 할 때… 사람들이 있었고, 나도 거기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보거나 말거나 했다.

Osaka, 2010
어떤 장면은 지나치게 강렬해 ‘이걸 보러 여기 왔나’ 싶어진다. 베를린 소호 하우스 호텔 앞 횡단보도에 어디까지나 ‘독일 남자’일 수밖에 없게 생긴 남자가 자전거를 멈추고 있었다. 나이키가 아디다스로 보이는 나는 속으로 말한다. ‘돌아보지 마.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 너의 우월한 제국을 건설해. 그리고 다 이겨버려.’ 오사카 지하철에서 가쿠란을 입은 소년이 한없이 무엇에든 가까운 잠을 자고 있을 때는 “다음 역에서 내려야 해” 그러고 싶었고, 밀란에서 쇼를 마치고 건물을 빠져나오던 모델이 담뱃불을 빌릴 때는 다가가 “나도”라고 말해버렸다. 어떤 장면은 저만치 떨어져 본다 해도 강렬하다. 시시한 건 언제나 찾아오는 부두의 이별도 아닌 계절이다.

Jeju, 2018
겨울에 곽지해변으로 빈 바다가 놓여 있었다. 에사우이라 공항에 내렸더니 비행기에서 청사까지 광활한 활주로를 걸어야 했다. 그런가 하면 여름에 협재해변에서 점점이 오가는 이들을 보다가는 뒷목이 타버렸다. 그리고 서울로 가을이 오는 날, 하필 국립중앙박물관 계단에 있기도 했다. 공중으로 문이 달리지 않았으나 그곳을 관문이라 부르기는 쉬운 일이었다. 크고 너그럽고 겸허한 문. 그런 문을 또한 알고 있다. 교토 난젠지의 삼문이 꼭 그렇다. 문은 벽이 아니라 막지 못한다. 바다는 산이 아니라서 오르지 못한다. 의자는 처음 보던 너와 같아서 다만 호젓해진다. 빈 칸, 빈 그릇, 빈 자리, 마음도 모양이 있다면 그런 모양이 아닐까.

Athens, 2017

Moscow, 2015
미술관에서 작품 곁을 서성이는 사람과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 나는 그 뒤에 서길 좋아한다. 등 뒤에 서서 나는 어엿하게 자란 사람, 도시의 규율과 윤리를 익힌 사람, 나보다 나은 사람을 연기한다. 돌아보는 눈과 넓게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밀물처럼 차오르고, 행여 주저앉는다 한들 웃을 것이다. 한번은 파리 로댕 미술관에서 머리 없는 보행자를 보았다. 여름에 모스크바의 아름다운 지하철역에서는 소냐와 세르게이를 보았다. 밀라노 중앙역에서 밀려드는 여행자를 보았다. 따뜻하고 충만해지는 감정을 행복이라 칭하는 바, 마침내 열차가 도착하고 작품 앞이 휑해지면, 다시 시작이다.

San Sebastian, 2009

Jigasaki, 2016
‘휙’이라는 글자는 ‘퀵’이라는 뜻과 통하는가봉가. 좋은 화장품으로 놓치지 않을 것과 손에 든 카메라로 놓치지 않을 것은 어떻게 다른가 하면 전자에 없는 것이 후자엔 있으니 바로 폭력이다. 잠자리채로 잠자리를 잡는 폭력. 뛰거나 밟거나 장난치거나. 실은 꿈틀거릴수록 나는 막무가내 잡아챈다. 한번은 보로부두르에서 오토바이로 산간도로를 질주하는 아이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레이싱처럼 된 적도 있다. 너는 달려, 나는 찍을게. 모쪼록 지금 벌어지는 일 앞에서 알맞은 태도를 갖는 것이야말로 우아한 일이 아닐까. 나는 그럴 때 마구마구 소리지르는 종류의 거대한 우아미를 가지려 노력할 것이다.
Jigasaki, 2018
계단을 내려가다 계단을 올라오는 사람을 만난다. 골목으로 들어서다 골목으로 빠져나오는 사람을 만난다. 4층 창에서는 아래로 지나는 사람을 보고, 지나는 사람은 4층에서 나는 음악 소리를 알아듣기도 한다. 우연이거나 이치거나, 만나고 헤어진다. 얼마 전 제주 중산간도로를 달리다 비상등을 켜고 차를 세웠다. 말이 있었다. 너는 말이구나. 네가 거기 있구나. 말은 한국말을 못하니까 “가던 길 가세요” 했대도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
더 많은 화보는 <데이즈드> 2018 10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