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Jong Hyun Lee
Photography Tae Hwan Kim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의 딸로 태어났다. 그건 축복이었나?
어릴 때는 철이 없어 원망을 많이 했다. ‘유명 디자이너의 딸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스스로 삶을 개척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부정적인 면만 본 거다. 어리석었다. 지금은 남보다 앞서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하지만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부담과 무게감도 있다.

런던에서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우영미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바로 엄마 밑에서 일을 시작한 이유가 있나?
어릴 때 우리 집은 부유한 편이 아니었다. 어디 맡길 형편이 되지 못해 엄마는 늘 나를 회사에 데려가셨다. 한글을 깨치기도 전에 공장 아줌마들에게 바느질을 배웠다. 진로 고민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다. 당연히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식적으로 일을 시작한 건 2002년이지만 훨씬 전부터 공장과 매장을 왕래했고, 다른 진로에 대해 고민할 것도 없어 자연스럽게 디자이너가 됐다.

일찌감치 확신을 가졌나?
처음 파리에서 쇼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펑펑 울었다. 아쉬워서. 컬렉션을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울었나 싶지만, 아직도 그 기분을 잊지 못한다. 그때의 감정으로 해나가고 있다. 한 직업을.

2013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롤을 맡기 시작한 후 우영미는 급격히 젊어졌고 변했다. 기존 고객들이 반감을 가질 정도로. 급진적 전환을 원했나?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있었다. 꾸준히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아니면 과감하게 변하거나. 회사 입장에서는 어머니와 듀오로 활동하는 게 절충안이었다. 나에게 모든 권한이 넘어왔으면 더 세게 밀어붙였을 거다. 많은 타협이 있었지만 굉장히 파격적이었다. 기존 고객들이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미디어로부터는 더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매출도 늘었다.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머물러 있으면 도태될 뿐이다.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2015년 S/S 시즌을 준비하던 시기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매일같이 싸웠다.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설득했다. 그런 결과물이다. 어머니를 워낙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봐서 어떤 걸 좋아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다른 부분을 이해시키는 게 관건이었다. 도전의 연속.(웃음)

어떤 변화를 주고 싶었나?
솔직히 우영미는 꾸준히 ‘아트를 좋아하는 남자’를 표방했지만,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아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일반 회사에 다니는 사람 같았고, 옷과 함께 남성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실을 직시해야 했고 정말 추구하는 남성상이 아티스트라면 현재를 대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남성상과 실제로 그 옷을 입는 남성이 매치될 때 옷에서 힘을 느낀다. 현실과 상상의 남자는 같아야 한다. 내가 생각할 때 당시 우영미는 상상하는 남자와 실제로 입는 남자가 달랐고, 그걸 합치기 위해 도전이 필요했다.

과거에 우영미는 캠페인을 통해 다양한 아티스트와 협업하며 패션에 예술을 투영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적극적으로 예술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
내가 그리는 우영미의 남성상은 현대 보헤미안이다. 요즘의 예술가는 그림만을 그리지 않는다. 화가이면서 뮤지션이고 주말 저녁에는 DJ가 되기도 한다. ‘예술’ 하나에 다가가기보다는 ‘예술에 관심이 많은’ 보헤미안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다양한 관심사를 복합적으로 드러내는 동시대 남자를 표현하려 했다. 그런 모습을 잡아내고 싶었다.

파리에서 쇼를 선보였음에도 우영미의 컬렉션에는 늘 한국적인 어떤 것이 엿보였다. 그 부분에서 케이트 정은 어떤가?
한국적일 때도, 아닐 때도 있지 않을까? 그냥 어울리면 되는 것 같다. 다음 이미지 컷의 모델을 한국인으로 결정했다. 한국인이어서가 아니라 우리 분위기와 어울려서. 패션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는 지금 굳이 지역성을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옷의 선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브랜드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앤드로지너스, 로맨틱, 보헤미안이다. 이 세 개의 단어가 브랜드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모든 작업이 이뤄진다.

지금 우영미가 선보이는 중성적인 옷과 스타일이 유행이다. 왜 인기가 있는 걸까?
사람들이 점점 완벽해지고 싶어 하기 때문이 아닐까? 버지니아 울프가 쓴 《올랜도》라는 책을 좋아한다. 여자와 남자라는 성을 구분하지 않고 그 경계를 넘어섰을 때 인간은 완벽해진다는 메시지가 있다. 중성적 스타일이 인기를 끈다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인간이 완벽해지려고 하는 것 같다. 한 가지 성을 고집한다는 건 완벽하지 못하는 길이다.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니까.

케이티 정의 우영미는 라프 시몬스의 디올일지, 에디 슬리먼의 생 로랑일지 궁금하다.
둘 모두의 길이 아닐 것 같다. 그들은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다. 밖에서 들어오고 공부해서 새롭게 받아들인 사람들인데 나는 여기서 길러진, 스스로가 아카이브인 사람이다. 아카이브를 이어가는 것 같지만 또 내가 생각하는 다른 것이 있다. 기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바꾼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 될 것이다. 나도 궁금하다.

앞으로의 우영미는 더욱 젊어질 것 같고 그간 볼 수 없던 액세서리 라인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머니가 브랜드의 마케팅에 대해 조용한 편이었다면 나는 그 반대다. 늘 열려 있고 패션은 다양한 형태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은 어떤 옷을 만드느냐보다 어떻게 입느냐가 중요한 시대다. 그래서 우영미의 스타일링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요즘 남자들은 옷을 정말 잘 입는다. 우리 옷을 사는 고객이 옷을 잘 입는 사람이면 좋겠다. 스타일이 좋은 남자는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고, 옷에 많은 여지가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단 하나의 방식으로만 입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여러 형태로 스타일링할 수 있는 옷을 만들려 한다.

어머니가 딸 대신 일을 택한 것 같아 서운했다는 인터뷰를 봤다. 이제는 그때의 어머니 입장이 되었다.
그 입장이 되어보니 육아와 일을 동시에 하는 건 참 대단하다는 걸 느낀다. 일단은 양쪽 다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쉽진 않겠지만.

사랑이 먼저인가, 일이 먼저인가?
당연히 사랑이다. 일도 사랑 때문에 하는 거다.

자식에게 브랜드를 물려주고 싶은 생각은 없나?
전혀. 가족이 아닌 외부 사람에게 물려주고 싶다. 가족 사업은 힘들다.(웃음)

미래의 우영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나아갔으면 하는 방향이 있나?
그건 그 사람에게 달려 있지 않을까? 이 브랜드를 시작할 때부터 내 역할은 줄기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거름이 되고 내가 잘 이어받아 후대에 전달하는 줄기 역할을 해야 했다. 그러면 다음 세대에서 꽃을 피울 수 있을 것 같다. 나 다음을 생각하기보다는 끊어지지 않게 지금에 충실해야 한다.

그럼 줄기가 곧 목표도 되나?
줄기는 내 역할이고 목표는 다르다. 어머니가 칭찬에 인색한데, 몇 번 안 해준 칭찬 중 “넌 내가 만든 최고의 작품이야”라는 말을 정말 좋아한다. 그 말에 맞게끔 살아가는 게 목표다. 좋은 작품이 되고 싶다. 그녀를 좋은 아티스트로 만들고 싶다. 우영미를 좋은 아티스트로 만들려면 내가 좋은 작품이 되어야 한다. 그게 우리의 관계라 생각하고 나의 개인적인 목표다.

어머니에게 들은 잊지 못할 조언이 있나?
자신에게 갇히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디자이너는 스스로에게 갇히는 순간 끝이라고.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는 게 좋지만 그게 독이 될 수도 있으니 늘 한 번 더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옷은 늘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 질문이다. 패션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세상이 패션을 바꿀 수 있을까? 나는 그게 더 궁금하다.

 

15 S/S 한 가지 성을 고집한다는 건 완벽하지 못하는 길이다.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니까.

14 F/W 우영미를 좋은 아티스트로 만들려면 내가 좋은 작품이 되어야 한다.

18 F/W “옷은 늘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