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의 빨래 널기는 의식과도 같다.
아침 출근길 세탁기 버튼을 눌러 시작된 빨래는 기계적이고도 전투적인
목욕을 마친 후 서로의 젖은 몸이 꿉꿉해지지 않도록 온 종일 발버둥을 쳤다.
목 빠지게 주인을 기다리는 것은 간절함이 있어서다.
한시라도 빨리 빨랫줄로 인도돼 자신만의 공간이 생기길 바라는
소박한 꿈은 내 방이 생기길 간절히 바라던 유년 시절과 닮았다.
이토록 치열했던 그들에게 향까지 나길 바라는 것은 과욕이다.
멀쩡한 것만으로도, 괜찮다. 고맙다.
이 시간의 빨래 널기에는 관용이 필요하다.
관용이 필요 없는 부분은 글쓰기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것은 새벽 2시의 빨래 널기가 끝난 후
설거지 가득 쌓인 싱크대를 마주하는 것보다 더 고독하다.
이유는 명료하다.
말이 많아져서다.
선생님은 부반장 겸 미화부장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고,
아버지는 성실하게 효도하면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말이 많아지는데 글이 잘 써질 수는 없다.
지혜로워져야 한다.
나는 좋은 애인이고 싶다.
나는 좋은 편집장이고 싶다.
나는 좋은 아들이고 싶다.
나는 좋은 친구이고 싶다.
나는 좋은 외삼촌이고 싶다.
나는 좋은 디렉터이고 싶다.
나는 좋은 오빠이고 싶다.
나는 좋은 발행인이고 싶다.
나는 좋은 애인이고 싶다.
지혜로워져야 한다.
새벽 2시의 빨래 널기는 의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