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을 맞아 세종시에 계신 부모님 댁을 찾았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머니의 음성이 들립니다.
“아들, 아들이 좋아하는 갈비찜 해놨어.”
엄마 손에 이끌려 어느새 제 앞에 놓인 갈비찜 맛을 봅니다.
짜지도 달지도, 그렇다고 너무 싱겁지도 않게 제 입에 딱 적당합니다.
무턱대고 사르르 녹아버려 씹는 재미가 없는 그런 갈비찜도 아닙니다.
적당히 쫀득해서 갈비를 먹고 있다는 기분을 충분히 느낄 법한 꽤 괜찮은 갈비찜입니다.
“맛있어, 엄마.”
이렇게 유난스럽게 갈비찜을 대동해서 절 맞이하는 데는 서로 함께한 추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열두세 살 무렵 어머니의 첫 갈비찜을 맛봤을 때 일입니다.
어머니는 갈비찜을 준비하겠노라고 보름 전부터 우릴 들뜨게 했습니다.
당시 우리 사정에 갈비찜은 TV 드라마에서나 보던 고급 음식이니 그 주말 저녁은 그야말로
디데이였습니다. 식탁 위로 등장한 갈비찜 통으로 순식간에 아버지와 여동생,
그리고 저의 젓가락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요.
짜도 이렇게 짤 수가요.

두 번째 어머니의 갈비찜을 맛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야심 차게 만든 2차 갈비찜 역시 안타깝게도 실패였습니다.
질겨도 이렇게 질길 수가.

자연스레 우리 집에서 갈비찜은 사라졌습니다. 전 열아홉 살 무렵 일본으로 유학을 간 뒤부터
부모님과 함께 살지 못했고, 이따금 같이하는 밥상에도 갈비찜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한 3년 전부터였을까요.
어머니의 갈비찜 도전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추석, 설날 할 것 없이 주로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 그 타깃이었습니다. 못 먹겠다는 수준에서 꽤 먹을 만하다는 평으로, 정말 맛있다는
감탄으로 그렇게 송편과 떡국 대신 갈비찜의 진화를 거듭하면서 우리는 단단해져갔습니다.

“엄마, 정말 뭐든 해봐야 느는 법인 것 같아.”
직접 경험은 그 무엇도 이길 수 없습니다.
매년 수차례 담그셨던 어머니의 김치는 제가 기억하는 한 점점 훌륭해졌으니까 말입니다.

<데이즈드>가 <데이즈드>의 맛이 제대로 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젊고(어리다는 것이 아닌), 다르며(틀리다는 것이 아닌), 독립적인(독단적이라는 것이 아닌)
패션 잡지로서의 맛을 내고 싶은데 말입니다.

제가 <데이즈드>를 요리한 지도 어느덧 1년하고도 반입니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어머니의 갈비찜이 그러했듯이 맛없었을 때의 사정, 그리고 맛을
찾기까지의 과정과 현재를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데이즈드> 팀은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격려해주세요.
황금 같은 지면에 여러분의 격려나 바라는 이토록 철없는 사람이지만 말입니다.

진짜 ‘봄’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