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사이가 먼 편입니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옆이 보입니다.
조금 과장을 덧붙이자면 학생 때는 칠판을 바라보고 앉아 있어도 짝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부 알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집중력이 부족했습니다.
마음을 다잡아도 어쩔 수 없는 기웃거림이 발동했습니다.
에디터 일을 시작하면서는
한 분야를 깊게, 마니아적인 관점에서 몇 페이지에 걸쳐
칼럼을 써 대는 선배들이 마냥 부러웠습니다.
먼 눈 사이를 탓하는 동시에
그들처럼 되기 위해 노력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다닌다는 강북 구석의 아지트에서 새우 깡에 소주를 나발로도 불어보고
프랑스 영화를 틀어 놓고 울다, 웃다
능력 밖의 아이템을 6페이지로 만들겠다며 데스크와 싸우다 말다
그 연예인이 가장 피하고 싶어했던 질문을, 뭐라도 된 양 집요하게 추궁하기도 했습니다.
채 1년은 안 걸렸습니다.
제 정체를, 눈 사이는 이번 생에선 좁혀질 수 없다는 것을 말이죠.
그렇게 또 몇 년이 흘러
어느 날 문득(전 그 날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못 믿겠지만 마치 흰 두부를 뚫고 나오는 듯 묘한 기분이 든 순간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전 제 눈 사이가 먼 것을 상당히 좋아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 그러고 보니 제 이상형이 옛날 옛적 SES 바다 씨(죄송합니다)부터
유독 저와 닮은 ‘거리감’이였다는 것도 생각났습니다.
얕지만 이 곳 저 곳 안 판 곳이 없는,
배당 받은 원고는 한꺼번에 창을 열어 놓고 한 줄씩 번갈아 쓰는
뭐, 그런 ‘잡’다함.
이게 저더군요.
동경의 대상은 누구나 있으며 때론 필요합니다.
저 역시 그들로 인해 더 이상 선글라스를 쓰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먼 눈 사이가 가려지면 진짜 제가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었으니까요.
<데이즈드> 11월호에는 여자들이 가장 닮고 싶어할 만한,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여자들의 이야기로 조금 더 많이 담았습니다.
여러분의 본질 찾기에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이현범
Bom Lee
이달의 사람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
알렉산더 왕이 발렌시아가를 떠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궁금해한 건 알렉산더 왕의 슬픔이 아니었습니다. 과연 누가 발렌시아가의 새로운 수장이 될까 하는 부분이었죠. 패션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갈구하고, 세대교체에 환호합니다. 그렇다고 전통을 무시하냐고요? ‘숭고한’이란 표현이 무색할 만큼 아카이브를 찬양하고 그들이 용납하는 ‘과정’이나 ‘환경’을 거치지 못한 자의 잘됨을 눈에 뜨고 보지 못합니다. 패션은 삶만큼이나 이율 배반적입니다. 발렌시아가도 고민이 많았겠죠. 그들의 선택은 베트멍(Vetenemts)의 헤드 디자이너인 뎀나 바잘리아였습니다. <데이즈드> 10월호에서 ‘탑’이 입고 등장했을 정도로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베트멍의 디자이너라는 점은 젊은 친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카드입니다. 뎀나 바잘리아가 3대 패션 스쿨 중 하나인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에서 공부했고,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여성복 팀과 루이 비통에서 7년간 일했다는 경력은 어른들을 설득하기에 좋은 보증입니다. 발렌시아가는 현명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저 뎀나 바잘리아의 새로운 발렌시아가 컬렉션을 기다리면 됩니다. 과거와 미래에 양다리를 걸친 패션은 시작이나 과정보다는 그 ‘결과’를 가장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딱 ‘Bitch’니까요.



